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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 코로나19 팬데믹, 재난이 차별을 만났을 때

김승섭 [외]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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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  코로나19 팬데믹, 재난이 차별을 만났을 때 표지이미지
도서 상세정보
서지사항정보
자료유형단행본
개인저자김승섭 [외]지음
김승섭
김사강
김새롬
김지환
김희진
변재원
서명/저자사항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코로나19 팬데믹, 재난이 차별을 만났을 때 /김승섭 [외]지음
발행사항서울 :동아시아,2023
형태사항323 p :도표 ;23 cm
ISBN9788962624991 03330
일반주기 공지은이: 김사강, 김새롬, 김지환, 김희진, 변재원
서지주기주: p. 304-323
가격정보\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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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M055728 363.34 우299ㄱ 인권도서관/인권도서관/ 대출가능

목차 일부

들어가며
: 우리의 상처는 미래를 바꾸고 있는가

1장 감염보다 추방이 두려운 사람들
: 코로나19와 이주민

2장 스스로 살아남아야만 했다
: 코로나19와 장애인

3장 밀려난 사람들, 떠넘겨진 위험
: 코로나19와 노동

4장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박탈당한 시간
: 코로나19와 아동

5장 돌봄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
: 코로나19와 여성

나가며
: 코...

목차 전체

들어가며
: 우리의 상처는 미래를 바꾸고 있는가

1장 감염보다 추방이 두려운 사람들
: 코로나19와 이주민

2장 스스로 살아남아야만 했다
: 코로나19와 장애인

3장 밀려난 사람들, 떠넘겨진 위험
: 코로나19와 노동

4장 보이지 않는 아이들의 박탈당한 시간
: 코로나19와 아동

5장 돌봄의 최전선에 선 사람들
: 코로나19와 여성

나가며
: 코로나19와 기억의 경쟁

  • 신제도주의 연구 /
    신제도주의 연구 /
    정용덕 ...[등]지음
    대영문화사,, 1999.
  •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주해 . 1-3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주해 . 1-3
    노동법실무연구회 지음
    박영사, 2023
  • 불평등의 재검토
    불평등의 재검토
    아마티아 센 지음 ;이상호
    한울아카데미, 1999
  •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  인권위 상임위원 3년의 기록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 인권위 상임위원 ...
    박찬운 지음
    혜윰터, 2023
  • 사람, 장소, 환대
    사람, 장소, 환대
    김현경 지음
    문학과지성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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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 코로나19 팬데믹, 재난이 차별을 만났을 때
  • 0
  • 2023-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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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코로나19 팬데믹이 지나간 자리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언어는 무엇일까. 지난 3년의 시간을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에 집중하여 ‘성공적인 방역’이라고만 기억하는 일은 위험하다. 그러한 방식의 기억은 지난 3년 동안 각자의 사회적 자리에서 팬데믹을 차별적으로 경험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고,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위험을 가장 먼저 자신의 몸으로 감당했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경험으로부터 한국 사회가 배우고 변화해야 하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일이기도 하다."

김승섭 교수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국 사회에서 각자 다른 취약계층을 연구하는 다섯 명의 연구자들을 모았다. 여성, 아동,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민이다. 이들은 재난이 덮쳐오기 전에도 이미 한국 사회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처해 있던 이들이다. 그러나 기존에 이들이 겪고 있던 불평등과 차별의 구조가 재난을 만나는 순간, 그 상호작용은 어떻게 일어났을까?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에서 “부는 상층에 집중되고, 위험은 하층에 집중된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초기부터 많은 사람이 “바이러스는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라고 말해왔으나, 그 말은 절반만 맞았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지만, 우리는 진공의 실험실 속에서 바이러스와 접하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마주했던 팬데믹의 모습은 정말 모두 같았을까? 김승섭 교수를 위시한 여섯 연구자가 이 책을 통해서 묻고, 다시 답한다.


코로나19 팬데믹, 한국 사회에서 ‘만들어진’ 재난
사회적 약자 각자가 마주해야 했던 팬데믹의 얼굴들


K-방역의 국가적 성공 속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이주민에게 자신들이 ‘국민’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김질시킨 시간이었다. 이주민들은 위험한 저임금 노동과 재생산을 담당해줄 이주노동자로, 결혼이주여성으로 호명되어 한국으로 왔지만, 재난을 겪는 내내 배제당하거나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취급되었다. ‘감염보다 추방이 두려운’ 그들에게 코로나19 시기 전달된 메시지는 극히 명료했다. “필요하니 여기 남아라, 하지만 알아서 살아남아라.”
아동 인권은 후퇴했다. 방역 과정에서 아동의 존재는 잊히거나 뒤로 밀려났다. 방역 정책은 진행 과정에서 아동의 발달과정에 따른 취약성과 신체적·정신적·심리적·정서적 변화가 가파르게 나타나는 시기인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 아동의 삶은 오로지 성인을 기준으로 집행되는 방역 정책에 일방적으로 우겨 넣어졌다.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학업과 사회적 경험이 모두 중단되는 경우가 많았으며, 더욱이 이러한 상황에서 부모의 사회적·경제적 자원에 따라 아동의 경험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레 그로 인한 불평등은 더욱 커졌다.
여성은 직장과 가정에서 모두 고된 시간을 보냈다. 돌봄노동자를 비롯한 보건의료인력 중 다수가 여성이었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자신의 조직에서 관리자가 아닌 일선 실무자로 일하는 경우가 많았고 자신의 의견을 조직의 방역 대책에 반영하기 어려웠다. 그들은 필요최소한의 안전장비조차 없이 소독과 같은 방역 업무를 추가로 담당해야만 했다. 여성이 더 많이 종사하는 서비스업이 팬데믹으로 인해 크게 위축되었고, 여성의 실업률은 급증했다. 보육시설과 학교가 종종 문을 닫는 상황에서 집에 머무는 아이들을 돌보는 부담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가정 내 돌봄과 안전의 책임을 지는 여성 노동자들이 고용시장에서 이탈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가장 약한 노동자에게 위험한 작업을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는 시기에도 계속해서 발생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팬데믹을 거치며 코로나19 감염의 위험이 더 높은 직장에서 일했으며 소득이 감소하거나 실직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확진자와 접촉할 경우 자가 격리를 포함한 감염관리는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고 그로 인해 생겨나는 건강 악화나 실업 역시 개별 노동자가 책임져야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 노동자에 비해 유급백신휴가를 사용하지 못하는 비율이 높았다. 직장 방역의 핵심 요소였던 ‘아플 때 쉴 권리’는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비장애중심주의는 방역 과정에서도 드러났고, 그로 인해 팬데믹 시기 장애인의 고통은 가중되었다. 예방적 코호트 격리 시행시설로 지정된 장애인 거주시설에서는 거주인 대다수에게 먹고 씻는 것과 같은 최소한의 활동만이 허용되었고 인적 교류를 포함한 기본권이 박탈되었다. 심지어 실제 감염은 통제를 받았던 장애인이 아니라 출퇴근을 하던 시설의 노동자에 의해서 전파되었으며, 이러한 격리 정책이 아무런 정당성도 실효성도 없음이 분명한 상황에서도 코호트 격리 조치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다. 코로나19 확진이 되거나 감염이 의심되어 자가 격리 또는 재택치료를 해야 했던 중증 장애인은 일상생활을 모두 홀로 수행하는 불가능한 생활을 해내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신장장애인의 코로나19 치명률은 비장애인 대비 8.8배라는 극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순수하게 바이러스가 만들어낸 재난이 아니었다. 그것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한국 사회의 만남이 만들어낸 풍경이었다. 여성, 아동, 장애인,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민 등의 취약계층은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부터 가부장제, 연령 차별, 비정규직 차별, 비장애중심주의, 인종 차별 등 차별과 불평등의 역사 위에서 살아왔으며, 그 열악하고 위험한 삶의 조건은 코로나19 팬데믹을 만나 재생산되고 또 증폭되었다. 이들은 사회적 고립과 경제위기 등, 팬데믹이 초래한 어려움을 견디기 위한 사회적 자원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못했고, 조직의 의사결정과정에서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에 방역과 관련되어 자신의 목소리를 낼 길이 없었다.


여성, 아동,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민….
취약계층의 교차점으로 재난은 찾아든다


여섯 연구자들은 『우리의 상처가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를 통해 여성, 아동, 장애인, 비정규직, 이주민이라는 다섯 취약계층이 팬데믹 기간 동안 감내해야 했던 고통을 들여다본다. 이 책의 본론부는 이들 취약계층 각각을 집중적으로 조망하는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 글에는 ‘이름’이 없다. 공저자 여섯 명의 이름이 병렬적으로 표기되어 있을 뿐, 각 장에는 누구의 이름도 별도로 달려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이 책을 쓰기 위한 작업이 ‘각자가 각자의 전문 분야에 대해서 쓴 글을 모은’ 단순한 모음집, 그 이상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그러한 방식의 공저가 한국 사회의 지난 3년을 담아내기에 불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하나는 교차성이었다. 우리가 마주한 어떤 아동은 자폐증을 가진 장애인이었고 많은 여성과 이주민은 비정규직 노동자였으며, 또 어떤 이는 장애를 가진 이주 여성이었다. 그렇게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의 정체성은 중첩되어 있었고 그 중첩은 기계적으로 나누어 분석할 수 없는 것이었다. (…) 또 하나는 한국 사회라는 공통의 지반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섯 집단은 같은 시기 한국 사회를 살아낸 이들이었다. 팬데믹 시기 이주민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기 위한 공부는 장애나 여성 분야 공부에도 밑거름이 되었다. 여섯 연구자가 각자 공부하고 활동하면서 구축한 세계를 서로 내보이고 나누며, 홀로 공부하고 글을 쓸 때는 얻을 수 없는 통찰이 생겨나리라 믿었다."

저자들은 이 작업을 시작한 2022년 여름부터 매주 정해진 시간에 함께 모여 서로의 공부를 나누었다. 인터뷰 계획을 같이 세우고, 인터뷰 내용을 공유하고, 고민을 함께했다. 실제로 글을 쓰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였다. 함께 글을 쓰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연구를, 원고를 완성해 나갔다. 이 과정을 통해, 애초에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큰 영향을 서로 주고받을 수 있었다. ‘취약계층’, ‘사회적 약자’, ‘소수자 집단’을 연구한다고 하지만, 서로의 앎과 고민은 너무나도 달랐고, 그것들이 서로 맞부딪힐 때 이전에 없던 고민이 새로 생겨났다. 누군가가 쓴 ‘우리나라’라는 표현을 보고 이주민 연구자는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있어서 대한민국이 ‘우리나라’인 것은 아닐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장애인 연구자는 보호시설을 연구하면서 시설의 문제가 아동의 문제와도 와닿아 있음을 다시금 생각하고 아동권리에 대한 글을 새로 써냈다. 연구자들이 수집해온 ‘이주여성’의 인터뷰를 보면서 이것이 비단 한국만이 아닌 모든 여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임을 실감하게 되는 순간 또한 있었다.
저자들은 서로의 공부를 나누면서 여성, 아동, 장애, 노동, 이주 분야에서 활동하는 37명의 인터뷰를 모아 팬데믹 시기 사회적 약자들의 시간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그리고 이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한국 사회에서 취약계층을 힘들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성립되어 있는지를 다시 한번 되새기고, 그 차별적인 구조가 국가적ㆍ세계적 재난을 만났을 때 어떠한 방식으로 변모하여 개인을 덮쳐오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다루지 못한 지점도 많다. 성소수자, 노인, 수도권 외 지방 및 시골 지역…. 얼핏 공고해 보이는 이 사회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크고 작은 균열이 있고, 그 취약한 틈으로 감염은, 재난은, 불평등은 찾아든다.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흘러듦에 주목하고 이의를 제기하고자 했던 이 연구가, 틀림없이 다시 찾아오는 감염병 재난에서 ‘재난불평등’이 반복되는 것을 막고, 나아가 사회 불평등의 구조를 바로잡기 위한 길잡이가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함께하는 시민이고자 했으나 결코 국민일 수는 없었던 이들
코로나19 팬데믹 3년, 울리지 못한 목소리를 그러모으다


"영주권 취득한 태국 국적의 결혼 이주여성이었는데, 그분 사는 지자체에서 가구당 마스크를 나눠줬대요. 한 사람당 세 개인가 다섯 개인가 이렇게 줬는데, 그 집에 온 마스크를 세어보니까 한 사람분이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그 집 시어머니가 동사무소에 전화를 해서 한 명 빠졌다고 했더니 그럴 리가 없다면서 확인을 하더래요. 그러더니 며느리가 외국인이라고, 그래서 빠졌다고…."


당연한 일이었다. 영주권자는 국민이 아니었으니까. 팬데믹 초기, 코로나19가 ‘우한 폐렴’이라는 혐오 표현으로 불리던 때, 여러 다중이용시설에서 ‘외국인 출입금지’ 내지는 ‘중국인 출입금지’ 팻말이 내걸렸다. 이주민들은 여기에서 차별에 대응하기보다는 가능한 ‘외국인’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숨을 죽여야 했다.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혹시라도 외국인이라는 것이 티가 날까 두려워 병문안을 오겠다는 친지를 극구 말려야만 했다.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국민이 먼저”였으니까. 정부가 제공하는 안내 문자나 방역 수칙 등의 정보는 한국어로만 제공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주민들이 알 수 있는 언어로 번역되었을 때는 이미 진작에 지침이 바뀌고 난 다음이기 일쑤였다. ‘지금’ 시점의 방역 수칙이 어떻게 되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던 이주민들은 언제 자기도 모르는 새 방역 수칙을 어겨 추방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었다. 사람보다 “국민이 먼저”였으니까.

"국가가 국민이 아닌 이주민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권리 보장의 근거가 국가에 대한 기여라고 한다면 이주민을 배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이주민도 한국 사회에서 경제 활동을 하는 생산과 소비의 주체이자, 이를 통해 세금을 납부하고 사회보험의 기여금을 분담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헌법이 국가에 국민의 권리만을 보장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국제법과 조약이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기본권을 국가의 관할권 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도 보장해야 한다는 것 역시 헌법의 조항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시기 많은 이주민들은 ‘국민을 먼저’임을 납득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의 ‘시민’이고자 했다. 이주노동자들은 휴업이 길어지고 임금이 체불되는 와중에도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는 사업주를 탓하지 않고 인내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그들에게 오로지 한국인들에게만 주어진 휴업급여와 재난지원금으로 답했다. 나이지리아의 위협을 피해 한국으로 이주한 비아프라공동체는 지역사회의 일원으로서 힘을 보태고자 기금을 모아 손 소독제와 마스크를 기부하고 단체 헌혈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그들에게 오로지 배제로 답했다. 국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2023년 6월 29일, 한국 법무부는 투자이민제도의 기준 금액을 일반 투자 기준 5억에서 15억으로 상향한다고 밝혔다. 미국의 투자이민 기준 금액인 80만 달러(약 10억 5,000만 원)에 비해서도 한참 높은 금액이다. 한국의 국적 문턱은 높다. 대다수의 이주민이 아무리 애를 써도 닿을 수 없는 학력, 연령, 소득 등이 귀화의 조건으로 걸려 있다. 그런 와중에 ‘비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권리 보장 의무조차 다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 한국 사회가 지향하는 모습은 무엇인지, ‘이주민’의 얼굴을 통해 다시 한번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