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나는 늘 아버지가 부끄러웠다. 사생아였던 나는 여섯 살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버지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공에 집착했지만 그럴수록 내 스스로 마음의 감옥에 갇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 내 삶의 방향을 잡아줄 사람을 찾게 되었을 때 문든 고 이구영 선생(1920-2006)이 떠올랐다. 2000년 8월 우연히 그를 만났고 그의 희미한 목소리 속에서 뭔가 모를 아픔이 느껴졌다. 나는 장기수 출신인 그가 남과 북의 두 가족, 전향과 비전향, 한학과 사회주의의 경계에 서서 자신의 정체성을 물었던 사람이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두 가족의 아버지로서 노촌선생의 뼈아픈 아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